책과 음악: 글자와 멜로디가 만나는 순간
📖 책 속 문장
“음악이 멈춘 뒤에도 여운은 계속된다. 책도 그렇다.”
– 무라카미 하루키
1. 음악과 책, 두 개의 언어
책을 읽을 때 배경에 흐르는 음악은 종종 문장과 섞여 새로운 감각을 만듭니다. 어떤 음악은 글의 속도를 바꾸고, 어떤 음악은 한 문장을 오래 붙잡게 합니다. 흥미로운 건, 음악과 책 모두 ‘언어를 넘어선 언어’를 갖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음악은 음표라는 기호로, 책은 문자라는 기호로 우리 마음속 깊은 부분을 건드리죠.
저는 대학 시절 시험 공부 대신 도서관에서 소설을 읽곤 했는데, 그때 늘 이어폰 속에서 흐르던 건 클래식이었습니다. 드뷔시의 「달빛」을 들으며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을 읽을 때, 라스콜리니코프의 죄책감이 마치 피아노의 잔잔한 떨림으로 제 안에 스며드는 듯했습니다. 글자는 소리 없는 선율이 되었고, 음악은 문장 없는 시가 되어 제 안에서 하나로 겹쳐졌습니다.
2. 음악이 만든 독서의 배경
책을 읽다 보면 어떤 순간은 음악 없이도 충분히 강렬합니다. 그러나 마음이 산만하거나 집중이 어려울 때 음악은 하나의 의식처럼 책 속 세계로 들어가는 문을 열어 줍니다.
예를 들어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은 비틀즈의 노래 제목에서 비롯된 소설입니다. 이 책을 읽을 때 실제로 「Norwegian Wood」를 틀어두면, 와타나베와 나오코의 외로운 세계가 음악의 울림 속에서 훨씬 더 생생히 다가옵니다. 음악은 책이 놓인 풍경을 채우는 배경음악(BGM) 역할을 합니다. 책의 감정이 머릿속에서 흘러나와 귀로, 그리고 온몸으로 퍼져 나가는 순간이죠.
3. 책 속에 숨어 있는 음악들
많은 작가들은 작품 속에 음악을 심어두곤 합니다. 하루키는 재즈와 클래식, 비틀즈와 빌 에반스를 자유롭게 인용합니다. 김훈은 문장 자체를 현악기의 켜짐처럼 써 내려갑니다. 박준 시인은 시 속에서 노래 가사를 가져와 독자의 감각을 흔들어 놓습니다.
책 속에서 음악을 발견한다는 건, 단순한 참고 자료가 아니라 작가가 내민 비밀의 열쇠를 건네받는 일 같습니다. 어떤 음악을 듣느냐에 따라 문장은 다른 색을 띠지요. 같은 소설을 읽더라도, 슈베르트를 들을 때와 재즈를 들을 때, 그리고 빗소리만을 배경으로 들을 때 전혀 다른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4. 나의 독서 음악 플레이리스트
저는 책을 읽을 때마다 작은 플레이리스트를 만듭니다. 소설에는 주로 재즈와 피아노곡을, 철학서에는 무거운 클래식 교향곡을, 시집에는 잔잔한 어쿠스틱 기타를 곁들입니다. 그리고 가끔은 책 속에 등장한 음악을 실제로 찾아 듣습니다.
예를 들어, 『위대한 개츠비』에는 재즈 시대의 화려한 음악들이 배경으로 깔려 있죠. 실제로 1920년대 스윙 재즈를 틀어놓고 개츠비의 파티 장면을 읽으면, 문장은 활자로 머물지 않고 진짜 음악회장처럼 움직입니다. 책 속 장면이 제 방 안으로 들어오는 듯한 몰입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5. 음악이 멈춘 뒤에도 남는 것
책을 덮고 음악이 꺼진 뒤에도, 남는 것은 여운입니다. 때로는 한 문장이, 때로는 한 소절이 마음속에서 계속 울려 퍼집니다.
며칠 전에는 릴케의 시집을 읽으며 피아졸라의 탱고를 들었습니다. 낯설게 보일 수 있는 조합이었지만, 릴케의 고독한 언어와 피아졸라의 격정적인 선율이 묘하게 어울렸습니다. 책을 다 읽은 후에도, 음악이 멈춘 후에도, 마음속에는 ‘살아간다는 건 곡선 같은 일’이라는 잔향이 남아 있었습니다.
책과 음악이 함께 할 때, 독서는 하나의 감각 체험이 됩니다. 글자는 소리로, 소리는 색으로 번져 나가죠.
6. 독자에게 드리는 질문
여러분은 책을 읽을 때 어떤 음악을 곁들이시나요? 혹은 정반대로, 오직 책의 침묵만을 선택하시나요?
만약 오늘 책을 한 권 펼친다면, 그 순간 어떤 노래가 배경으로 흐르면 좋을까요?
책과 음악은 결국 우리를 같은 곳으로 데려갑니다. 마음 깊숙한 곳, 아직 언어로 설명되지 않은 자리로요. 오늘은 한 문장과 한 곡을 짝지어, 스스로의 작은 콘서트를 열어 보시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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