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계절: 계절이 바뀔 때마다 다시 읽고 싶은 책들

 봄이 오면 사람들은 새 계획을 세웁니다. 새 운동화를 꺼내 신기도 하고, 일기장을 새로 사기도 하지요. 그런데 저에게는 봄마다 다시 꺼내 읽는 책이 있습니다. 바로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입니다. 이 책은 한여름의 태양과 바다를 배경으로 하지만, 제게는 언제나 봄의 냄새와 함께 찾아옵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대학 시절, 벚꽃이 피던 교정에서 처음 이 책을 읽었기 때문입니다. 따뜻한 바람 속에서 “오늘, 엄마가 죽었다”라는 문장이 시작되던 순간의 공기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계절은 책을 기억의 상자에 담아두는 열쇠가 되곤 합니다.

여름이 되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책은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입니다. 여름 방학 동안 친구와 바닷가로 놀러 갔다가, 덥고 습한 펜션 방 안에서 며칠 동안 이 책을 읽었던 기억 때문입니다. 밖에서는 친구들이 시끄럽게 웃고 떠들었는데, 저는 오히려 그 소란을 배경음 삼아 데미안의 말에 빠져들었습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라는 문장은 제게 한여름의 땀 냄새와 함께 각인되어 있습니다. 계절과 문장이 얽히면, 다시는 분리되지 않는 기억이 됩니다.

가을은 사색의 계절입니다. 단풍이 물드는 길목에서 늘 꺼내 읽는 책은 파스칼의 『팡세』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이 책은 읽을 때마다 절반 이상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가을이 되면 왠지 모르게 이 책을 꺼내 들고 싶습니다. 단풍잎이 지는 풍경을 보며,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라는 문장을 되새기면, 이해를 넘어선 어떤 울림이 찾아옵니다. 가을의 쓸쓸함은 이해되지 않아도 곁에 두고 싶은 문장을 찾게 만듭니다.

겨울에는 두터운 담요 속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을 읽습니다. 차가운 바람이 불면, 왠지 이 책의 인물들이 떠오릅니다. 와타나베, 나오코, 미도리… 그들의 상처와 외로움이 겨울의 한기와 맞닿아 있기 때문일까요. “죽음은 삶의 반대편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일부다.”라는 대사가 눈 내리는 풍경과 묘하게 겹쳐집니다. 추운 계절일수록 인간의 내면은 더 깊이 파고드는 것 같습니다.

책은 단순히 글자가 아닙니다. 책은 계절의 공기와 함께 기억되고, 다시 꺼내 읽을 때마다 그때의 냄새, 온도, 분위기를 불러옵니다. 그래서 계절은 책의 또 다른 표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같은 책도 여름에 읽을 때와 겨울에 읽을 때의 감정은 전혀 다릅니다.

저는 그래서 매년 같은 시기에 같은 책을 다시 읽는 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봄의 『이방인』, 여름의 『데미안』, 가을의 『팡세』, 겨울의 『노르웨이의 숲』. 이 책들은 계절의 달력처럼 제 삶을 채워주었습니다. 마치 달력이 바뀔 때마다 약속된 친구를 만나는 것처럼요.

📌 독자 여러분께 묻고 싶습니다.
당신에게도 계절마다 꺼내 읽는 책이 있나요? 봄이면 생각나는 문장, 여름밤이면 떠오르는 대사, 가을의 공기와 함께 읽고 싶은 책, 겨울에만 꺼내 보는 소설 한 권이 있나요? 댓글로 당신의 ‘계절 책’을 나눠 주신다면, 우리 모두의 책 달력이 조금 더 풍성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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